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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제가 빨갱이 목사입니까”  

“주여 제가 빨갱이 목사입니까”




























[한겨레] 책임 편집한 현대사 책 한권 때문에 좌경 목사로 몰린 정진권 목사…진보 목회자들에게 일상화된 공포, 보수 교회의 매카시즘이 몰아친다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그를 아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교회 안에서는 교인들에게 전도폭발 훈련을 하고, 중국에서는 1천여 명의 탈북자들에게 복음을 전한 목사였다. 출석 교인 750명, 서울 강서구 염창교회의 정진권(52) 목사. 1980년대 그 흔하던 ‘운동’ 한 번 안 했던 그가 최근 ‘좌경 목사’로 몰렸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그의 사상을 검증해 그가 쓴 책이 ‘반미적 색채가 농후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일부 장로들은 ‘친북반미’ 목사 아래서 교회에 다닐 수 없다며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격심사위의 심사결과도 거부

정 목사는 왜 좌경 목사가 된 것일까. 그는 지난해 7월 한국에서 열린 세계감리교대회(WMC)에서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책 <사진으로 본 분단 60년>의 책임 편집장이었다. WMC는 세계의 목회자 3천여 명이 참여하는 큰 행사로, 서울 금란교회에서 진행됐다. 정 목사는 “대회의 주제가 화해였던 만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부터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2002년 서해교전까지 사진을 곁들여 한국 현대사를 요약한 책이었다. 정 목사는 이 책이 퇴진운동의 화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발단은 대회 도중 일부 목사와 장로들이 “좌경·반미적인 자료가 어떻게 미국 목사도 있는 세계감리교대회에 나눠줄 수 있느냐”며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한 데서 비롯됐다.

문제는 WMC 이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감리교의 지역조직인 서울남연회(서울 강남)의 14개 지방 사회평신도 총무(장로)와 감리교 실행부위원인 민아무개 장로가 이 책의 편집장인 정 목사의 징계를 요구하며 교단 차원의 조사를 주장한 것이다.

이들이 제기한 사상적 문제점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무능력한 이승만 정권”이라고 표현하며 대한민국 정체성 훼손 △1946년 4월6일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고 호칭 △김일성을 ‘김일성 주석’이라 호칭 △실정법을 위반한 문익환을 옹호 △이북이 주장하는 대로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맺자고 주장….

이들은 특히 “정진권 목사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라는 용공·친북단체(비전향 장기수를 돕는 단체)에 가입해 운영이사까지 맡고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친북반미 사상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책의 발간사를 쓴 신경하 감리교 감독회장(교단 대표 목사)에게도 미국에 대한 입장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대회에 참석했던 미국 및 외국 대표들에게 사과문을 발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리교 총회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 목사 등 기고·편집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10월17일 조사위원회는 교단 총회에 “책의 내용은 반미적 색채가 농후하다”고 보고했다. 교단 총회는 편집자인 정진권 목사를 염창교회가 소속된 서울남연회 자격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12월20일 자격심사위는 정 목사를 불러 조사했고, “반미친북의 목회자가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고 최종 통보했다.

하지만 장로들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아무개 장로는 자격심사위원장인 금성호 목사에게 1월2일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 “1월10일까지 재심사를 하지 않으면, 서울남연회 평신도회 총무들과 함께 문제 없다는 직권 남용 혐의로 자격심사위원회를 교회법상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시인하는 간첩 있나요?”

염창교회의 일부 교인들은 정 목사 퇴진을 요구했다. 염창교회의 인사위원(장로·부서 대표로 구성)들이 연명해 정 목사를 이임시키기 위한 인사구역회를 서울남연회에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남연회는 인사구역회 소집을 거부했다. 인사구역회 개회권을 갖는 한정석 서울남연회 감독은 “목회자의 사상 문제는 인사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감독 권한으로 이들의 문서를 반송했다”고 말했다. 인사구역회가 성사되면, 정 목사는 담임목사직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교회 인사위원 33명 가운데 20여 명이 인사구역회 소집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교단과 교회, 안팎에서 몰린 정진권 목사는 싸우는 길보다 성찰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사진의 선택이 편중되고 언어 사용에 문제점이 있지만, 책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정 목사는 “사진들은 모두 일간지에 공개된 것들”이며 “내용도 중학교 교과서 수준에서 모두 읽는, 시중에 판매되는 역사책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의심은 거둬지지 않았다.

정 목사는 교회 홈페이지에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사상고백서’를 썼다. “나는 지난 100년의 현대사가 미국의 주도하에 이끌어온 것처럼 앞으로 100년의 역사도 미국이 이끌어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미군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나는 국가보안법 폐기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반미주의자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부강한 나라가 되어, 그 토대 위에서 평화적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감리교 목사로서, 그리고 세계감리교대회의 대표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며 <사진으로 본 분단 60년사>에 대해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로와 교인들은 정 목사의 낮은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12월12일 서울 강서 지역 교회 장로 대표들로 구성된 강서지방장로회 38명은 이 지방 감리사인 정 목사가 주재하는 구역회(예산 등 결정기구)를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정 목사가 점점 ‘식물 목회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아무개 장로는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지금 민주노동당에서 간첩으로 걸린 사람이 스스로 시인한 사람이 있나요? 총회 조사위원회에서 반미적 색채가 농후하다고 결론 내린 겁니다. 이건 기독교에서 안 되는 일이에요. 우린 정 목사의 7년 목회를 평가 내렸습니다.”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 매카시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한다. 감리교 인터넷신문인 <당당뉴스>를 운영하는 이필완 목사의 말이다. “사회에서 불던 좌경 논쟁이 교회 안까지 들어왔어요. 정진권 목사처럼 운동권도 아닌데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까지 친북반미로 내몰리는 거예요.”

소설책 한권 소개하고 좌경으로 몰려

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의 고신신학대학원 길성남 교수도 2004년 말 좌경으로 몰려 곤혹을 치렀다. 그 또한 1987년 6월항쟁 때 한두 번 시위대를 따라다닌 경험 말고는 정치 활동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학생들에게 황석영의 <손님>을 읽으라고 권했어요.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대립했던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을 통해 시각을 넓혀보라는 취지였지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된 거예요.”

한 학부모가 이를 ‘이적 서적’으로 받아들여 문제를 제기했고, 길 교수의 사상 문제는 부산 노회 석상에서 거론됐다. 친북반미 사상을 가진 교수가 학생들을 오염시킨다는 이유였다. 길 교수가 새벽기도 설교 때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다”고 말했던 사실까지 죄목으로 추가됐다. 길 교수는 1월3일 전화 통화에서 “다행히 교단의 주요 목사에게 친북반미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제 학생들에게 발언도 조심스럽게 하게 돼요. 교회의 분위기가 거의 매카시즘 수준에 이르렀어요.”

색깔 논쟁은 각 교단의 총회장 선거나 기독교계 대학 선거에서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지난해 8월 목원대 총장 선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 잔뼈가 굵은 김영주 목사는 교수·교직원 투표에서 129표 대 29표로 상대 후보를 압도했지만, 이사진은 정작 29표를 받은 이요한 목사를 총장으로 추대했다. 당시 목원대 총장 선거 과정을 지켜본 한 목사의 말이다. “KNCC 인권국장으로 일했던 김 목사의 운동권 경력이 문제가 된 거지요. 김 목사가 반미 성향이라는 사상 공세도 심했어요. 이런 논리가 이사진들에게 통하면서 사실상 확정됐던 선거 결과가 엎어진 거예요.”

지난 1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 선거에서는 사상검증성 질문지가 돌려졌다. 기독교계 비정부기구(NGO)를 표방하는 ‘기독교사회책임’이 두 후보에게 교단 운영과 관련이 없는 정치·사상적 질문을 던진 것이다. 16개 질문 가운데는 이런 내용도 있다. “목사님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생각입니까?” “햇별·포용정책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맥아더 동상 철거 시도 사건 이래로 친북좌파 세력이 크게 문제가 되고 최근에는 386간첩단 사건까지 터진 바 있습니다. 이런 좌경화 흐름에 대한 목사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한 후보에게는 이런 질문도 던져졌다. “목사님은 친DJ라고 불리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두 후보가 모두 보수 인사였기 때문인지, 이들은 친절한 답변을 보냈다. 기독교사회책임의 최규호 사무처장은 “교회 최고 지도자가 국가적 중요 사안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한 일”이라며 “사상검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사학법 개정과 관련해 종교단체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정부가 설치한 사학법시행령개정위원회에 참여한 한 목사도 ‘사상적 의심’ 때문에 소속 교단으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교단의 입장과 달리 사학법을 찬성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저기서 ‘좌경 색출’의 의지 분출

“교단 총회에서 공문이 왔는데, 임원회의에 나와 해명하라는 거예요. 청와대에서 대통령에게 말한 내용을 진술하라, 교단이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내가 평소 사회 참여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노무현 정부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분위기예요.”

기독교 내부의 매카시즘은 보수 교회가 서 있는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난 언행이 발생했을 때 작동한다. 최근 보수 기독교계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친미반북 사상’으로 해석되고, 다시 한 번 변용돼 국가보안법 존치, 사학법 재개정, 좌파 정권 교체 등의 ‘사상 검증 체크리스트’로 속류화됐다. 사상 검증 체크리스트에 걸리면 매카시즘이 작동한다. 문제는 이런 사상 잣대를 가지고 있는 일부 보수 교회의 행태가 저항적이 아니라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보수 기독교는 밖에서는 ‘좌파 정권’의 피해자인 양 저항하고 있었지만 안에서는 가해자가 되어 다른 생각을 가진 목회자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사실 갑작스레 돌출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보수 기독교계 내부에선 ‘좌경 색출’의 의지가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지난해 2월 한국기독교신앙운동실천협의회(한기실·이사장 이수영 목사)가 창립됐다. 600여 교회가 가입한 이 단체는 ‘좌경 사상의 침투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한 연합 조직’이라며 언론에 소개됐다. 창립 예배의 설교 주제는 ‘성전을 청소하라’였다. 이종성 목사는 “목사들 중에서도 남한의 인권 문제는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동족 600만 명을 참살하고 매년 200만 명을 굶겨 죽이는 김정일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사이비 목사들이 있다”며 “사상적·도덕적·종교적 불순분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걸 방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재성 한기실 사무총장은 1월3일 “그동안 새문안교회에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며 “전교조의 민중사관에 노출된 교회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사상검열은 약하게는 색깔논쟁에서 강하게는 매카시즘으로 발전한다. 매카시즘은 내면의 검열과 공포를 조성한다. 1950년대 미국에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시절 <뉴욕타임스>의 존 비 오크스 논설위원은 편집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매카시즘은 우리 모두의 말과 글과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어디에 참여할 때 전보다 훨씬 조심하게 되었다. 우리의 행동이 극우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장차 공격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감리교 ‘운동권’ 목사들의 기도

이러한 공포는 진보적 목회자들에게 이미 일상화돼 있었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다가 교단의 영향력 있는 보수적 목사나 장로에게 친북반미로 찍히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서울 강남 순례자교회 정상복 목사는 “교회가 워낙 보수화돼 젊은 목사조차 소신껏 발언하기보다는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목사가 사회 활동을 하면 1970~80년대엔 도덕적 지원의 정서가 있었지만, 지금은 친북반미라는 시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탄하듯 말을 이었다. “운동권 목사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정서가 생겼어요. 속된 말로 운동권 목사로 찍히면 대형 교회는커녕 중형 교회도 못 가고 큰일을 맡을 수 없죠. 진보적인 목사들한테 무조건 친북반미라고 하는데, 우리는 김정일과 부시를 동시에 반대하는 것이지, 무조건 북한을 옹호하고 미국을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숨죽였던 감리교의 ‘운동권’ 목사 20여 명은 연말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2월28일 서울감리교신학대학에 모였다. 일면식도 없는 정진권 목사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목사들은 통성으로 기도했다. “사상·이념 문제로 단죄받는 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정 목사의 문제는 우리 문제이자, 한국 기독교의 문제입니다.” “거짓 앞에 침묵하던 우리가 회개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정 목사를 통해 잠들었던 양심이 깨어나길 기도합니다.”

12월31일, 정진권 목사는 2006년의 마지막 설교를 마쳤다. ‘내(하나님) 앞에서 행위 완전하라’는 주제의 설교였다. “오늘은 제가 간절히 말합니다. 저는 좌경 목사도 아니고 반미 목사도 아닙니다. 어떻게 목사가 친북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고백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핍박받는 자의 안식처가 돼야 할 교회가 어쩌다 핍박하는 빌라도가 됐을까. 정진권 목사가 진 십자가가 한국 기독교가 진 십자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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